悲愴 - 崇禮門

2008/02/11 21:07

숭례문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역 4번출구. 그리로 가는 동안에 내내 긴장되더군요.
믿기 싫은 사실.
그 현장을 확인하러, 눈으로 직접 보러 간다는 것 자체가 긴장이었습니다.
과연 숭례문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하게 될 지...

4번 출구로 나가 조금 걸으니 한눈에 보이더군요.
잔디 언덕 위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또다시 조급해져오는 마음에 조금 뛰었습니다.
그리고 철골대 사이로 쳐진 가림막 위로 참담하게 무너져내린 숭례문이 보였습니다.

서울역을 마주보는 면의 숭례문

서울역을 마주보는 면의 숭례문


경악스럽더군요.
저쪽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하고 있는 외신 기자도.
숭례문 폴리스라인 바로 앞에 좌르륵 설치해놓은 카메라들도, 그리고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처참한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최대한 가까이 가서 눈에 담았습니다.
저것이 우리 어리석음의 유물이자 증거이니까요.
주위에선 한숨 소리가 셔터 소리와 함께 터져나왔고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한동안 바라보다가 막 뒤의 숭례문을 보고 싶어 뒷쪽의 잔디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숭례문 주위의 분위기는 '당혹'이었습니다.
촬영하는 것도 유난스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충격은 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그늘이 드리워져있었습니다.

그을리고 물에 녹아 희미해진 단청의 색.
까맣게 그을은 추녀의 신상들.
1층 기와 위에 쏟아진.. 누각의 까만 뼈다귀들.
노랗게 줄 간 폴리스라인.
주위 사람들이 한탄하듯 쏟아내는 일제시대때부터의 숭례문의 역사.
방화범을 잡아죽이라는 어느 할아버지의 분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서울역방향은 차라리 나은 편입니다.
1층의 서까래와 기와는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숭례문을 추모하며 한바퀴 돌면서 전소해버린 숭례문을 다각도로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과 같은 방향 면의 숭례문

서울역과 같은 방향 면의 숭례문


서울역 반대방향은 더 참담합니다.
누각 지붕 한 쪽이 떨어져내려 1층 지붕과 담장에 얹혔고 정말 뼈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인지 담장까지 무너져버린 모습도 보입니다..
좌, 우측의 문은 각각 한짝이 떨어져있습니다.

작년이던가요, 재작년이던가요..
강원도의 산불이 낙산사를 덮쳤을 때도 안타까웠지만 이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친근감 정도의 차이 때문이겠지요.
서울의 심장 부근에서, 그냥 늘 보고 넘어가는 길이지만, 늘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물이 한순간에 홀랑 타버리는 그 섬뜩함.
아침에 '전소' 라고 들었던 그 싸함과 충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담하고 슬프고 비통합니다..

과거 옛 모습까지는 바라지 못합니다.
5백여년을 버틴 옛스러움과 그동안 품어온 온기를 재현해낼 수는 없지요..
그러나, 앞으로 5백년.. 천년을 버틸 수 있게 복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토록 쓴 아픔을, 2008년에 2층 누각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숭례문의 소개 한 줄을 읽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위를 보며 그 후 또다시 5백년을 버텨온 숭례문을 자랑스레 볼 우리의 후대를 위해.. 온전히 튼튼하게 복원되기를 기원합니다.

p.s. 우리 저하♡께서 일필휘지로 쓰신 현판이 타버렸으면 정말로 길길이 날뛰며 온갖 험한 소리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숭례문 현판이라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복원 된 후에도 우리 저하께서 쓰신 현판은 그대로 달리겠지- 라고 나름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p.s.2  '지못미'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몰랐었다. 그래서 저런 단어를 쓰지도 않았다. 오늘, 완전히 소실된 숭례문을 보면서 '지못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감정을 느꼈다. 미안함, 후회.. 그리고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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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린호璘狐